코난의 5줄 기사 요약

제 글을 누가 읽겠습니까

에도가와 코난 2026. 6. 2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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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사용하면서 사라진 인간의 특성 중 하나는 ‘수줍음’과 ‘민망함’이다. 이전에는 책을 내려는 이들이 자기가 짠 목차가 괜찮은지, 문장이 어설프진 않은지 동료·가족·편집자에게 물었다. 편집자가 누군가에게 책을 내자고 제안하면 “제 글을 누가 읽겠습니까”라는 겸손 섞인 답이 돌아왔고, 투고할 때도 마치 심판대에 선 사람 같은 초조함을 내비쳤다. 이런 겸양은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② 대신 “저 책 썼어요. 얼마 안 있어 나올 거예요”라는 신인간이 출현했다. 그들에게서는 문법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더 나은 문장을 썼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부끄러움, 부족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후회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③ 학자들은 글을 쓸 때 전통적으로 ‘나’라는 일인칭 대명사를 쓰지 않고, 자기 본위적 동사도 삼갔다. 새로 발표하는 연구는 선학들의 어깨를 딛고 선 것이므로 내 것이라 말하기 겸연쩍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에는 ‘차마’라는 단어가 유보조항처럼 따라붙었고, 글에서 자기 책을 일컬어야 할 때면 ‘졸저’라는 말을 썼다(한편 요즘 편집자들은 졸저라는 말을 불편해하며, 저자들은 자신의 책을 공식 지면에서 당당히 추천해 민망함은 오히려 읽는 이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글은 기본적으로 승리를 가져다줄 수 없다. 인간의 경험과 사유는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기에 허점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히며 다음엔 채우리라 다짐한다. 따라서 ‘확신에 찬 저자’는 형용모순이며, 대개는 글이 겨우 제 꼴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앞선 시대의 사람들은 ‘나’란 존재가 인류 역사의 모서리에 자리한 파편이라고 여기곤 했다. 하지만 기계에 의존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미흡한’ 존재들은 급속하게 자취를 감추고, 기계의 보조와 매체의 후광에 싸인 저자들이 가볍고 빠르게 치고 나오고 있다.

⑤ 글쓰기는 실패의 연속이다.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아를 깎아 둥글게 만들고,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것은 확실히 안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유보하는 태도를 길러주며, 자칫 자기비하의 경계선에서 겸손함을 찾아, 궁극적으로 스스로가 작다고 인식해 너머의 세계에 가닿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부족한 글쓰기 능력은 끊임없는 손질 작업을 하도록 내몰면서 지성의 상대성을 발견하게 해주며, 오늘을 인내하도록 인간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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