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어린 시절 뛰어놀던 서울 쌍문동을 찾아갔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 친구와 구슬치기하던 골목은 흔적도 없고 모두 아파트 단지다. 서울 생활 다 비슷하지 않으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옛집과 놀이터가 사라져버린 풍경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추억을 품고 있던 공간이 지상에서 영영 소멸했다는 것. 과연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일일까.
② 최근 작가의 경북 김천 고향집에 책방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방 이름은 ‘뉴욕제과점’. 문득 25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계간 ‘문학동네’ 2002년 봄호 주인공은 젊은 작가 김연수였다. 문예지 읽는 사람이 극히 드문 요즘이지만, 내 책장 한편에는 여전히 손때 묻은 계간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때 실린 작가의 자전 소설 제목이 ‘뉴욕제과점’. 작가의 부모가 1960년대 김천역 앞에서 개업한 실제 빵집 이름이다.
③ 고전은 시간을 이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애란이 13년 전 ‘침묵의 미래’로 이상문학상을 받았을 때다. 당시 32세로 역대 최연소 수상 작가였는데, ‘최연소’의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젊은 작품은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년 전 고전을 읽다 보면 이 소설을 쓴 선배는 얼마나 젊길래 백 살이나 어린 나랑 이토록 말이 통할까 신기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계속 젊은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④ 문주 감독의 카메라는 시류나 유행을 뒤쫓는 대신, 시간의 풍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연의 딜레마를 건드린다. ‘피요르드’로 두 번째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상을 받은 것은 기쁘지만, 진짜 좋은 영화로 인정받으려면 10년 혹은 20년 후 ‘시간의 시험’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⑤ 당대에도 물론 좋은 작품이 있다. 하지만 대충 만든 ‘넷플릭스’ 콘텐츠에 속아 시간을 낭비할 때면, 차라리 다 버리고 고전을 다시 읽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가 아니어도 좋다. 누구나 가슴속에 자신만의 고전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 사실은 가차 없다. 시간을 이기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100년 뒤엔 이 시대의 소음과 잡음은 물론 우리까지 안개처럼 소멸하겠지만, 진짜 예술만은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 고전을 다시 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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