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화내는 모습을 평생 처음 봤다고 한다.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새삼스럽진 않지만, 놀랍다. 미국은 ‘유럽의 아이(a child of Europe)’지만, 은인이기도 하다. 2차 대전 때 약 25만명의 미군이 유럽 전선에서 피를 뿌렸다. 전후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선 것도 마셜 플랜 덕분이었다. 냉전기에는 약 30여만 명의 미군이 나토의 일원으로 유럽을 지켰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함께 나치즘을 분쇄했고, 공산주의와의 투쟁에서도 승리했다. 그 혈맹이 없었다면 서구 문명도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혈맹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② 지난해 2월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J D 밴스 미 부통령은 나토에 트럼피즘을 강의했다. 주제는 민주주의와 안보, 두 가지였다. 밴스는 유럽에서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의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코란을 불태우든, 낙태에 반대하든 개인의 자유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문제를 선거로 해결하는 체제라고 역설했다. 트럼피즘의 민주주의관이다. 하지만 관용 없는 자유, 숙의 없는 선거의 위험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밴스는 동맹의 ‘부담 분담’도 요구했다. 유럽의 반응은 싸늘했다. 회초리와 청구서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③ 같은 트럼피즘인데 반응은 천양지차였다. 왜 그런가? 먼저 태도 문제다. 밴스는 왜 다른지를 따졌지만, 루비오는 어떻게 같은지를 설득했다. 트럼프는 지금 동맹을 밴스 식으로 대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고, 이용당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동맹은 모두 악당이다.
④ 이런 트럼피즘에 캐나다가 가장 실망했다. 캐나다와 미국은 형제 같은 이웃 나라다. 9000㎞에 달하는 국경은 군대 없는 국경 중 가장 길다. 그런데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금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미국을 거칠게 비난했다. 그 연설은 “강자는 할 수 있는 대로 행동하며, 약자는 감내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아테네가 멜로스에 보낸 최후통첩으로서, 국제정치의 비정한 현실을 상징하는 ‘멜로스 대화(Melian Dialogue)’다. 카니 총리는 트럼피즘에 대한 순종을 ‘거짓 속에서 살아가기’라고 경멸했다.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공산체제의 위선을 폭로했던 표현이다.
⑤ 하지만 ‘까불면 죽는다’(FAFO)는 식은 미국이 서구 문명의 위대한 가치를 몰각했다는 징후다. 말이 부패하면, 영혼도 썩는다. 그래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졌다는 게 투키디데스의 통찰이라고 박성우 서울대 교수는 말한다. 가치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더 현실답게 만드는 굳건한 토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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