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의 5줄 기사 요약

'서비스 종료' 경고등 켜진 종교, '업데이트'만이 살길

에도가와 코난 2026. 1. 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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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양자역학을 탐구하게끔 진화하지 않았다(그러니 이해 못 한다고 자책할 일은 아니다). 심지어 진화론을 이해하게끔 진화하지도 않았다. 뇌는 오직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설계되었다. 가령, 원시 사바나 초원에서 수풀이 흔들릴 때, 우리 선조들의 뇌는 그것을 단순히 바람이라고 인식하는 것보다 포식자의 움직임이라고 믿게끔 작동했다. 그래야 유전자를 후대에 더 잘 물려줄 수 있었을 테니까.

인지심리학자 파스칼 보이어는 우리 마음속에 장착된 이 과민한 ‘행위자 탐지 장치’가 종교의 인지적 기원이라고 설명한다. 뇌는 의도를 과잉 탐지하고 우연 속에서도 패턴을 읽어내며 약간 특이한 것을 유난히 잘 기억하게끔 진화했다. 이 모두가 수렵채집기에 살아남기 위한 뇌의 생존 전략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 현상 배후에 어떤 의도를 가진 초월적 존재가 있다는 느낌은 여전히 자연스럽다. 배울 필요가 없는 본능이다.

로빈 던바의 통찰처럼, 종교는 낯선 타인들을 하나의 도덕 공동체로 묶어주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로 변용되었다. 영장류가 서로에게 털 고르기를 해주며 유대감을 다지던 방식은 집단이 150명을 넘어가면서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는데, 이때 인류 집단에 등장한 것이 바로 종교다.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초자연적 감시 체계는 집단 내 무임승차자나 배신자를 효과적으로 억제했고,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의례는 뇌에서 엔도르핀을 폭발시켜 수천·수만 명의 낯선 이들을 하나의 정서 공동체로 묶어냈다. 마치 도스(DOS)가 PC의 초기 운영체제였던 것처럼, 종교는 인류에게 세상을 이해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첫 번째 운영체제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종교가 ‘도스 체제에서 윈도우 체제로의 전이’처럼 거듭날 방법은 있는가? 지식과 세계관의 영역은 포기하고 가치와 의미의 세계에 집중한다면,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파편화된 개인들을 묶어주고 공동체의 온기를 나누며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역할 말이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그동안 종교가 가장 잘 해왔던 핵심 서비스가 아니던가?
 
세속의 권력을 탐하고 과학적 사실을 부인하며 공적 교육의 편집권을 쥐고 흔들려는 종교에는 ‘서비스 종료’밖에 답이 없다. 이런 시도들은 모두 종교라는 운영 체제 자체를 붕괴시킬 누더기 부가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민주주의와 법의 기초를 존중하고 사랑과 돌봄의 보편 가치를 실천적으로 ‘업데이트’할 때에야 종교의 유통 기한은 연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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