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지금도 계엄 그날 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그런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그날은 선명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몇십 년이 흘러도 또렷이 남을 기억이다.
② 계엄 시 기자들의 행동 매뉴얼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러나 편집국에 집결한 기자들은 모의 연습이라도 했던 것처럼 신문을 만들고 인터넷 뉴스를 송고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보고 사설을 한번 더 고친 뒤에야 새벽에 귀가했다.
③ 그러나 그날 밤 일들이 유독 흐릿하게 지워진 집단이 있다. 왜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했는가. 국민의힘에서 지금 이 질문은 금기다. 서로 물어서도 안 되고 답하지도 않는다. 어물쩍 넘기고 싶은 ‘불참의 기억’이다. 국힘에선 108명 중 18명이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했다. 한동훈과 가까운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당시 국힘 단톡방을 보면 집결지가 당사(黨舍)냐 국회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④ 불참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무지성파’다. 계엄이 무슨 의미인지, 의원들이 뭘 해야 하는지 그냥 몰랐던 사람들이다.
둘째는 ‘무소신파’ ‘눈치파’다. 국힘 관계자는 “당사에 왔던 의원 다수는 중진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셋째는 자기 판단에 따라 투표에 불참한 ‘확신파’다. 이들 중 일부는 대통령과 모의해 투표를 방해했다는 의혹으로 특검 수사 대상에 올랐다.
⑤ ‘무지성파’ ‘무소신파’ ‘확신파’ 중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자신이 묻고 답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기본이 안 된 ‘무지성파’, 권력만 좇아다니는 ‘눈치파’들은 정계 은퇴를 고려해봐야 한다. 공부하지 않고 공직을 출세 수단으로 보는 의원들이 재생산되는 한 국힘의 미래는 없다. ‘확신파’들은 왜 자신이 계엄을 지지했는지 이유를 밝히고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으면 된다. 인적 쇄신은 국힘 혁신위가 할 일이지 특검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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