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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3

"우리 동훈이" 윤·한 20년…가장 불운한 보수 1·2인자 됐다

① 12·3 비상계엄 사태가 여권을 권력의 진공 상태로 몰아넣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지 이틀 만인 16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직을 내려놨다. ② 사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윤 대통령은 부인하고 있지만, 계엄 때 체포 대상자 명단에 한 대표가 있었다는 진술이 이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대표는 12·3 사태 직후인 4일과 6일 윤 대통령을 직접 대면했지만 정국을 풀어낼 만한 진전은 없었다. 여권 관계자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믿고 무슨 타협을 하고 약속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③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우리 동훈이”라고 부르며 문재인 정부 말기 때는 ‘독립운동을 한 동지’에 빗댈 정도였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1년 ..

임기말 반복됐던 1인자 2인자 충돌, 이번에는 벌써 터져

① 집권당 대표가 현직 대통령을 비판해 갈등을 빚은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대부분 대통령 임기 말에야 표면화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현직 대통령 임기를 절반(2년 6개월) 남긴 상황에서 ‘명태균 통화 녹음’ 논란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설명·사과를 공개 요구한 건 그만큼 이례적이다. 정권 일·이인자가 충돌해 분열로 치달으면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례도 많다.  ② 과거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공개 충돌한 대표적 사례는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의 경우다. 15대 대선을 두 달 앞둔 1997년 10월 22일,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는 기자회견을 열고 ‘명예총재’였던 김 대통령의 탈당을 공식 요구했다.  ③ 2007년에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당의..

정치에 백전백승은 없다

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격한 갈등 사례로는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꼽힌다. ② YS-이회창 관계는 97년 대선 핵심 변수 중 하나였다. 93년 YS는 '대쪽 판사 이회창'을 감사원장과 총리로 연거푸 기용했지만 총리 권한을 둘러싼 대립으로 갈라섰다. 하지만 이회창은 96년 총선의 신한국당 간판으로 다시 영입됐고, 대선 후보까지 거머쥐었다. ③ 보수 분열의 3자 구도에 여당 내부까지 갈가리 찢겼으니 DJP(김대중+김종필)로 뭉친 상대를 이기는 건 난망했다. 결과는 YS와 이회창 모두의 패배였다. ④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대표 말처럼 이미 공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도를 넘는 갈등은 국정의 안정성을 해치고 여권의 리더십 위기를 초래한다. ⑤ 말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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