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2·3 비상계엄 사태가 여권을 권력의 진공 상태로 몰아넣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지 이틀 만인 16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직을 내려놨다.
② 사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윤 대통령은 부인하고 있지만, 계엄 때 체포 대상자 명단에 한 대표가 있었다는 진술이 이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대표는 12·3 사태 직후인 4일과 6일 윤 대통령을 직접 대면했지만 정국을 풀어낼 만한 진전은 없었다. 여권 관계자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믿고 무슨 타협을 하고 약속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③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우리 동훈이”라고 부르며 문재인 정부 말기 때는 ‘독립운동을 한 동지’에 빗댈 정도였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1년 전, 한 대표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한 직후부터 흔들렸다. 수직적 상하 관계에 익숙한 윤 대통령은 한 대표가 여당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뒤에도 ‘직속 부하’로 여겼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한 대표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한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주변에 “윤 대통령과 나는 이미 사사로운 관계를 떠나 역사 속 관계가 됐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각자 해야 할 일, 역할을 하면 된다”고 말하곤 했다.
④ 이미 이렇게 생각의 간극이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개개 현안에 관해 충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김건희 특검법을 비롯한 김건희 여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총선 공천 때 각자의 지분을 얼마만큼 인정할지 등은 당연히 뒤따르는 갈등 요소였다.
⑤ 윤 대통령의 말처럼 “20년 넘도록 교분을 맺어온” 두 사람은 결국 권력 앞에 갈라져 서로 큰 상처를 입혔다. 여권에선 두 사람이 2012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처럼 정치적 타협을 해내길 바랐다. 하지만 극한 갈등으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보다 못한 관계로 귀결됐다는 게 여권의 평가다. 결과적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 진영에서 가장 불운한 1ㆍ2인자 관계로 남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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