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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4 5

트럼프, 관세 '타깃' 계속 넓혀

① 2일(현지 시간·한국 시간 3일 오전 5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대규모 관세 부과 정책 발표는 자유무역에 기반한 국제 통상질서를 크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후 펼쳐진 통상전쟁 또한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② 9세기 미국의 모든 수입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했던 ‘관세왕’ 윌리엄 매킨리 전 대통령(1897∼1901년 재임) 이후 가장 강력한 관세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중국은 모두 미국에 반격할 뜻을 밝혔다.  ③ 다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관세 부과 조치가 미국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경제전문매체인 CNBC는 미국 내에서 고물가와 저성장이 공존하는 ‘스태그플레..

윤 대통령의 승복은 국민에 대한 '도리'다

①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발표하면 가슴에 쇠뭉치 얹은 듯한 우울증도 사라질까. 윤 대통령은 12·3 친위 쿠데타를 놓고 2월 4일 변론에서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했다. 대통령 말이 잔인하게 들린다는 건 국민으로서 비극이다. ② 1979년 12·12에서 1980년 5·17까지 가장 긴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은 그래도 ‘유능한 통치와 인기 없는 정권의 역설적 결합’이라는 평가를 받은 대통령이었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윌리엄 글라이스틴이 1987년 포린어페어스지에 쓴 ‘한국: 아시아의 역설’에서다. 당시 미국의 목표는 전두환 계엄이든, 또 다른 쿠데타든 군의 준동을 막아 평화적 정권 이양을 돕는 것이었다. 미국은 직간접으로 개입해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③..

복수를 거부한 조조

① 『삼국지』의 전쟁 장면이라면 적벽대전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가장 처절했고, 조조의 운명을 가른 것은 관도(官渡)대전(서기 200년)이었다.② 조조의 막료들이 원소의 뒤를 쫓았다. 원소는 문서와 귀중품을 모두 버린 채 기병 800명만을 이끌고 달아났다. 조조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원소가 버리고 간 물건들을 수습했다. ③ 조조는 전리품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빼앗은 문서 가운데 편지 한 묶음이 있었는데 모두가 조조의 부하 장수들이 주군을 배신하고 원소와 은밀하게 내통한 것들이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조조에게 아뢰었다. “일일이 이름을 대조해 모두 죽이시지요.” ④ 그 말에 조조가 이렇게 대답했다. “원소가 강성했을 무렵에는 나도 마음이 흔들렸는데 남들이야 오죽했겠는가?” 그러고는 그 편지들을 ..

무엇이 진짜 보수인가

① 내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나온다. 탄핵이 인용되면 보수 대통령으로선 두 번째다. 왜 보수 대통령이 탄핵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반복되는가. 보수 진영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래야 보수에 미래가 있다.② 상당 부분은 보수 정권 스스로 자초한 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국정농단 사태도 정권 내부에서 자라났다. 윤 대통령의 탄핵 위기도 12·3 비상계엄에서 비롯됐다. ③ 보수 진영의 진짜 위기는 어쩌면 아직 오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보다 20%포인트 정도 높기도 하지만(3월 넷째 주, 53% 대 34%), 선거의 승패를 가를 중도층에선 2.6배나 된다(62% 대 24%). ④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겪고도 민주주의와 주권재민(主權在民)에 대한..

철인 대통령 이승만을 다시 생각한다

① 2025년 3월 26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탄생한 지 꼭 150년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② 배재학당에서 공부한 20대 청년 언론인 이승만은 고종 폐위를 음모했다는 독립협회 사건에 연루되어 1899년 1월 한성 감옥에 투옥되었다. 자유를 빼앗기고 고문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그의 타오르는 열정은 1904년 『독립정신』 집필로 표출되었다. 『독립정신』은 당시 조선의 문제점과 주변 열강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조선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하며 조선 왕정 체제를 민주 공화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③ 이승만은 1904년 8월 석방되어 고종의 밀사로 미국에 갔다가 그곳에 남아 유학을 했다. 그러나 조선 독립을 꿈꾸는 그의 미국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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