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의 5줄 기사 요약

"19세기 일본도 서양함대 두려웠지만 조선과 달리 개방의 길로"

에도가와 코난 2025. 9. 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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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은 메이지유신부터 패전까지 근대 일본의 도약과 몰락의 역사를 우리의 관점에서 짚어 본 책이다. 19세기 일본은 인구와 경제 대국으로 에도 막부가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 일본은 체제를 변혁하며 근대화의 길을 걸었는데, 농민 반란이 잇따르던 조선은 불안한 체제를 고수하다가 몰락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박 교수는 “서양 함대를 본 일본도 외세를 두려워했던 건 매한가지였지만, 개방을 하고 적극적으로 외부의 충격을 받아들였다”며 “반면 조선은 개방을 너무 늦게 한 데다, 개혁의 길로 나아가려는 정치적 용단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서구 열강의 외압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국가의 전환점으로 삼아 능동적으로 도약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사실 개방은 인기가 없거든요. 충격이 있고, 관성을 바꿔야 하고, 손해 보는 집단이 생기고, 백성은 불안하니 동요하지요. 하지만 고립돼서 잘되는 사회는 거의 없습니다. 20세기 후반 한국처럼 리스크가 있어도 개방해 외부와 연결하고 교류해야 발전과 번영이 옵니다. 극단적 외세 배격의 끝엔 ‘주체 조선’, 북한이 있지요.”


메이지유신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하나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가 대표적이다. 미국 페리 제독이 함선을 이끌고 나타났던 1854년에 그는 에도에 있었다. 젊은 혈기로 ‘서양 오랑캐의 목을 따겠다’던 그는 ‘정신 승리’로 서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학자 아래로 들어가 서양 학문을 배웠다. 그리고 해군과 무역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투신했다. 유신의 양대 세력인 사쓰마번과 조슈번을 화해시키고 ‘삿초동맹’을 맺도록 중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도약은 침략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선 동아시아 정세에 별 변동이 없던 19세기 초, 세계를 인식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는 ‘웅비론’이 등장했다. 박 교수는 “외세의 침략을 당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위기감이 한편에선 ‘완전히 쇄국하자’는 쪽으로, 다른 쪽에선 거꾸로 ‘세계를 정복하자’는 뒤틀린 반동으로 나타난 듯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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