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영화 <승부>를 보기 전에는 이창호 9단의 성장 드라마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조훈현 9단의 재기 드라마였다. 알다시피 조훈현과 이창호는 사제지간이다. 이창호는 스승을 넘어서며 청출어람의 본보기를 보여주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창호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기고 바닥으로 떨어진 조훈현이 제자에게 다시 도전하는 게 서사의 중심이다.
② 바둑을 소비한 영화는 더러 있었지만 바둑 인생을 진지하고 깊게 들여다본 영화는 ‘승부’가 처음이다. 1989년 제1회 잉씨배에서 세계를 제패한 조훈현은 김포공항에서 한국기원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 집에 돌아오니 열네 살 여드름투성이 이창호(당시 4단)가 기다리고 있었다. 1984년부터 한집에서 먹고 자며 가르친 제자. 그런데 바둑 스타일은 서로 정반대였다.
③ ‘승부’는 대국이 아니라 복기 장면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복기란 이미 둔 바둑을 처음부터 다시 짚는 일이다. 어떤 수에서 승패가 갈렸는지, 승자는 무엇을 보고 패자는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 흑돌과 백돌로 ‘가지 않은 길’을 놓아보는 것이다. 물어뜯고 덤빌 대목에서 왜 물러났냐고 조훈현이 꾸짖자 이창호가 떠듬떠듬 대꾸한다. 그렇게 하면 싸움이 붙고 자칫하면 역전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물러서면 적어도 반집은 이긴다고.
④ 1995년 조훈현은 다 털리고 무관(無冠)으로 전락한다. 수없이 죽는 경험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훈현은 패배에 익숙해지거나 좌절하며 몰락하지는 않았다. 이 승부사가 바닥을 치고 올라가 다시 정상에 서는 과정이 ‘승부’의 하이라이트다. 영화에서 조훈현(이병헌)은 말한다. “창호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내가 언제든 질 수 있다는 걸. 창호가 그랬듯이 이제 제가 창호에게 도전해야죠.”
⑤ 바둑판에서 얻은 깨달음이지만 어느 인생이나 근본은 같다. 왜 실패했는지 정확히 진단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고수는 아플수록 복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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