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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카프카 2

카프카와 말러의 어긋난 만남

① 1908년 9월 19일, 말러 교향곡 7번 세계 초연이 프라하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는 26세의 보험 외판원 프란츠 카프카(사진)도 와 있었다. 친구 막스 브로트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온 것이었다. ② 이 브로트는 자기가 죽으면 작품들을 모두 불태워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과감히 무시함으로써 세계 문학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인물이다. 그는 말러의 교향곡을 듣고 카프카가 뭐라고 할지 무척 궁금했다. 유대인, 보헤미안, 부조리를 꿰뚫는 시선 등. 둘의 공통점도 적지 않으니 뭔가 감화를 받지 않을까. ③ 카프카는 예민한 청력의 소유자였지만, ‘음악적 귀’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거대한 교향악의 빽빽한 울림이 그를 쉴 수 없게 했을까. 아니면 공연장이라는 환경이 못 미더웠는지도 모른다. 카프카는 이렇게 썼다..

한국과 체코의 100년 인연

①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수교한 뒤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로 체코공화국이 수립됨에 따라 그해 재수교했다. ②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대첩의 숨은 공신은 체코군단의 무기였다. 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지배를 받던 체코는 러시아 전선에 동원됐으나 이내 투항하고는 총구를 거꾸로 겨눠 오스트리아군과 전투를 벌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붕괴로 독립을 얻은 체코군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뱃삯이 절실했고, 그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무기가 간절했던 사람들이 한국 독립군이었다. ③ 과학·기술에 대한 체코인들의 DNA는 문학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세계 최초로 로봇이란 말을 쓴 사람은 1900년대 초반 프란츠 카프카와 동시대의 체코 국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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