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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엑스포의 굴욕

① 원형 건축물로 유명한 미국 애플 본사(둘레 1.6㎞)보다 훨씬 큰 이 ‘오오야네링’은 완공되면 세계 최대 목재 건축물로 등재된다. ② 하지만 일본에선 기대는커녕, ‘오사카의 동네 잔치’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5년에 한 번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엑스포가 일본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③ 일본에선 오사카 엑스포 티켓 사전 판매가 시작된 지 2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대치 이하다. 지난 4월 기준 판매량은 사전 판매 목표(1400만장)의 9%에 불과했다. 그나마 기업이나 오사카 주변에서 집중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④ 여기에 ‘건설 비용 증가’도 주최 측을 옥죄고 있다. 당초 박람회장 건설 비용은 1250억엔(약 1조700억원) 예상이었다가 지금은 2350억엔(약 2조200억원)이..

조선통신사 길 따라 '경요세계' 정신 배우다

① ‘청년 신(新)조선통신사’는 올해로 7회째다. 코로나와 노 재팬(No Japan) 운동 등 여파로 2019년 중단됐다. 신조선통신사 한국 대원들과 일본 청년들이 만나 교류한 것은 5년 만이다. ② 16세기 동북아 판도를 바꾼 임진왜란(1592~1598). 조선이 비록 승전했지만 인구의 20%인 200만명이 희생됐다는 추산이 나올 만큼 처참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조선과 일본은 종전 9년 뒤인 1607년(선조 40년)부터 국교를 재개했다. ③ 조선은 통신사(通信使·왕의 뜻을 전하는 사절단)를 1811년(순조 11년)까지 12회에 걸쳐 파견했다. 통신사가 가는 곳마다 성리학 등을 배우려는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조선·일본 양측에서 남긴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라

① 최근 북한과 러시아는 양국이 무력 침공을 당하면 서로 군사원조를 하자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다. 상당수 우리 국민들은 러시아가 북한의 군사행동을 지원한다는 조항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고 느낀다. ②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나 안보 지형은 수많은 격동기를 겪었다. 한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의 방향이 바뀌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들이 내부 정치를 위해 외교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③ 외교는 한 번으로 끝나는 일회성 게임이 아니다. 외교에는 영원한 우방이나 적이 없다. 오직 국익만 있을 뿐이다. 그런 만큼 관련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외교를 단기간에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게임으로 보면 장기적 국익을 해치게 된다. ④ 개방경제이면서 북한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은 주변 4대 강국의..

"여보, 절대 사퇴하면 안돼"

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대선 첫 TV 토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참패한 이후 ‘후보 사퇴론’이 거세지고 있지만, 바이든의 가족들은 주말 가족 모임에서 ‘대선 완주’로 의견을 모았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이 지난 30일 전했다. ② 민주당은 물론 진보 성향의 주류 언론들까지 일제히 대선 후보 교체를 거세게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가족들이 ‘거대한 장막(big curtain)’을 드리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③ 이런 헌터가 앞장서 ‘재선 완주’를 주장하자 소셜미디어에선 “아버지의 대선 가도를 막더니 이젠 명예로운 퇴로마저 막는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④ 일각에선 “가족의 ‘과두정(寡頭政·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 체제)’이 대통령의 상..

40년 만에 1만엔권 인물을 바꾼 까닭

① 지폐의 인물에는 가치관 이슈가 개입하고 돈도 꽤 들기 때문에 변경이 정말 어렵다. 그런데 일본이 지폐에 실리는 인물을 싹 바꿨고 최고액권인 1만엔권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낯선 인물이 등장했다.  ② 1958년에 처음 발행된 1만엔권의 인물은 쇼토쿠 태자였다. 율령 반포와 관료제 구축을 통해 고대국가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인물이다.   ③ 그리고 1984년, 메이지유신 시기의 계몽운동가 후쿠자와 유키치로 교체한다. 같은 책으로 당대에 200만권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던 인물이다. 그가 세운 대학교가 게이오대다. 대표적 주장이 ‘탈아입구(脫亞入歐)’인데 후진적인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 국가처럼 확 ‘변신하자’는 뜻이다. ④ 시부사와는 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로 불리지만 ‘연쇄 창업자’가 더 정확한 표..

쇄국으로 가는 유럽

① 유럽 발전을 이끈 정책 중 하나는 자유로운 교류, 개방을 상징하는 솅겐조약이다. 솅겐조약은 1985년 6월 14일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5개 국가가 룩셈부르크의 '솅겐'에 모여 국경 통행제한을 없애기로 한 데서 시작했다. ② 회원국은 이후 27개국으로 늘어났고, 1993년 유럽연합(EU)의 단일시장 출범, 1999년 유로화의 탄생 등과 함께 유럽이 발전하고 통합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한 정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③ 그런데 솅겐조약의 위상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추락하고 있다. 여러 사회문제의 근원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2020년 초에는 자유로운 이동이 코로나 전염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았고 결국 일시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④ 지난 30년간 교류의 상징이 뒷..

일본 20년만에 새 지폐 발행

① 여전히 현금 사용 빈도가 많은 일본에서 20년 만에 새로운 지폐가 등장했다. 지폐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뀌고 위조 방지 기능이 대거 장착된 것이 특징이다. ② 새 1만엔권에는 일본 메이지 시대 경제 관료를 거쳐 여러 기업의 설립에 관여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년)의 초상화가 들어갔다. 일제 강점기 경성전기(한국전력의 전신)의 사장을 맡으며 경제 침탈에 앞장서고, 대한제국 시절 한반도에서 첫 근대적 지폐 발행을 주도하면서 본인 얼굴을 새기면서 한국에 치욕을 안긴 인물이다. ③ 5000엔권에는 일본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쓰다 우메코(1864∼1929년), 1000엔권에는 일본 근대 의학의 기초를 놓은 기타사토 시바사부로(1853∼1931년)의 ..

바이든은 늙었고, 참모들의 사고는 더 늙었다

① 승부는 90분을 다 기다리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바이든의 참패’였다. 결론은 명확했다. 바이든이 생각한 토론의 본질이 틀렸고, 토론 준비 또한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이다. ② 바이든 캠프는 처음부터 이번 토론을 “인지력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암기력 테스트’로 봤던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측이 먼저 백지만 놓고 참모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맨몸 싸움’을 제안한 데서 짐작할 수 있다. ③ 슈미츠 교수는 “바이든은 1960년 닉슨이 왜 케네디에게 졌는지에 대한 정치학의 고전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닉슨은 정보량에서 케네디를 압도했지만, 유권자는 케네디의 손을 들었다”며 “TV토론이 지식 경연이 아니란 사실은 60여년 전에 증명된 일”이라고 했다.④ 공화당은 암..

테크노 봉건주의?!

① 그리스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지난해 출간된 ‘테크노 봉건주의’에서 미국 빅테크가 유럽에서 봉건제도를 되살렸다는 주장을 폈다. 구글·아마존·메타 등은 플랫폼이라는 ‘땅’을 제공하는 디지털 시대 영주고, 이 위에서 활동하는 개인과 기업은 영주의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하는 농노라는 것이다. ② 유럽 당국의 강력한 빅테크 규제의 배경에는 이 같은 ‘테크노 봉건주의(technofeudalism)’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미국 빅테크가 글로벌 디지털 영토를 모두 점령하는 바람에 이들을 능가하는 대형 테크 회사가 지금까지도 나오지 못했다. ③ EU 경쟁당국은 거액의 과징금을 통해 지금까지 빅테크가 독차지하던 이익을 강제로 나누고, 규제를 통해 시장에 더 많은 경쟁자들이 나타날 수 있게 ..

파멸을 향하여

① 1942년 5월 27일, 항공모함 4척, 경항공모함 2척으로 구성된 일본군 연합함대가 동쪽을 향해 발진했다.  ② 항모가 전멸하면 미군은 6개월에서 1년은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미국 본토인 하와이가 진주만 습격 같은 공습이 아니라 일본군 육상 병력의 침공 위협을 받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일본과 협상하고, 남태평양에서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③ 나중에 연구자들은 일본군의 계획이 출발 전부터 터무니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략은 급조되었고 준비는 다급했다. 작전계획은 빈 곳이 많았고, 전술과 장비는 균형이 맞지 않았다. ④ 전쟁사에서 이런 여백들은 언제나 지휘관의 예지와 신념, 때로는 독단으로 채워졌다.  ⑤ 그러나 승자와 패자의 결단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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