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의 5줄 기사 요약

쿠팡과 기술 봉건주의

에도가와 코난 2025. 12. 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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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런 홀대를 받고도 쿠팡을 계속 써야 하나.’ 지난 열흘간 한국 소비자들이 느낀 건 일종의 모욕감이었다. 퇴사한 쿠팡 직원이 5개월간 가입자 337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 로켓배송 상품을 추천하는 데 필요한 소비자 구매·행동 데이터는 중히 다루는 쿠팡이, 그 데이터를 생산해주는 소비자들의 집주소·실명·연락처가 줄줄 새는 건 전혀 몰랐다. 

한국 소비자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게끔 만들겠다던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소비자들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 큰 사고를 치고도 개인정보 유출 아닌 ‘노출’이라 고집하고, 창업자는 그 흔한 사과 한마디 안 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자신감.

쿠팡은 이런 이상한 방식을 ‘합리성’으로 설명해왔다. 더중앙플러스 기업연구 시리즈 ‘쿠팡연구’에 따르면, 쿠팡 경영진의 핵심 판단 기준은 ‘올바름’이다. 정의나 공정을 뜻하는 게 아니다. 더 합리적이고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 자본가다운 올바름(capitalistic correctness)이다. 기업이 효율을 추구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닌데도, 책임에 인색하고 사과에 꾸물대는 쿠팡이라 반감을 산다.

④ 이번 사태로 쿠팡이 괘씸하지만 차마 탈퇴할 엄두는 못 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데이터 농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중세시대 농노가 영주의 통제 하에 살며 세금을 바치는 대신 영주로부터 경작권을 보장받았듯, 우리는 지금 쿠팡 같은 플랫폼 서비스에 갇혀 내 돈과 시간을 써가며 데이터를 바치고 대신 로켓배송을 받고 있다. 한때는 창의와 혁신, 기업가정신의 상징이었던 빅테크 기업은 이제 독점을 지향하고 공적 영역을 봉건화하려는 ‘기술 봉건주의’의 상징이 돼버렸다(세드릭 뒤랑 『기술 봉건주의』). 

⑤ AI 시대에 기술 봉건주의는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AI 기업들도 쿠팡처럼 ‘○○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의 지위를 탐내고 있어서다. 이들은 AI 훈련을 위해, AI 서비스 개선을 위해 우리의 데이터를 노린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구조적 변화 없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 꺼지는 퇴행을 반복할 것인가. 이들 기업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에겐 디지털 농노가 아니라 AI 노예로 전락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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