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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행정학과 출신이다. 가고 싶은 과는 없었다. 사실은 있었다. 영화과다. 그 대학에는 영화과가 없었다. 있어도 문제다. 부모님이 좋아할 리 없었다. 사람이 꼭 좋아하는 걸 하고 살 수는 없다. 나는 그걸 일찍 깨칠 정도로 영리하긴 했다. 영리함은 종종 인간의 미래에 독이 된다.
② 행정학과를 간 이유는 성적이었다. 점수로 거들먹거리는 친구들은 다 출세, 아니 법대를 지망했다. 내 점수는 조금 모자랐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그랬나 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은 법대에 가지 않는다. 대부분 법대 출신인 정치인들 전과가 증거다.
③ 첫 수업에 등장한 이름은 막스 베버였다. 관료제의 아버지다. 옆 정외과 애들도 막스를 배웠다. 카를 마르크스다. 이쪽이 훨씬 재미는 있었다. 두 막스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반대였다. 그래서 하나는 공무원을, 다른 하나는 정치인을 키웠다.
④ 첫 시험에는 ‘공익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나왔다. 종잇장을 노려보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떠올랐다. 부친을 살해한 빈민가 소년 유무죄를 배심원이 합의해 나가는 이야기다. 그걸 토대로 ‘다수의 판단이 항상 공익인가?’에 대한 소설을 썼다.
⑤ A+를 받았다. 막스 베버를 달달 외운 친구들보다 나은 성적이었다. 내 장기를 깨달았다. 글이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교수를 현혹할 소피스트의 재능이었다. 지금 이딴 글을 쓰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는 실마리를 행정학과에서 찾았다. 때로는 헛된 샛길에서 내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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