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원자 폭탄 ‘리틀 보이’와 ‘팻 맨’은 80년 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각각 직격했다. 사망자는 21만 명에 달했다.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는 현재 뼈대만 남은 건물이나 각종 추모를 위한 조형물들·자료관 등이 들어선 평화기념공원이 조성됐다.
② 두 도시의 평화기념공원엔 전쟁의 참상과 평화에의 염원이 가득하다. 폭탄 투하 당시의 방대한 사진 자료는 화상을 입은 어린 아기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핵폭탄이 떨어지는 건 이곳이 마지막이길 바란다며 각지에서 보내온 수천 마리의 종이학 띠가 넘쳐난다. 하지만 대체 왜 원폭이 투하되었는지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침략의 역사는 생략됐다. 이 두 장소의 시곗바늘은 원폭을 맞은 그 순간부터 돌아간 듯만 했다.
③ 공원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도 있다. 당시 두 지역의 한국인 희생자는 전체의 5분의 1 정도로 추산된다. 히로시마의 한국인 위령비는 1970년에 세워졌을 무렵엔 공원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다가 1999년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④ 의아하게도 희생자 위령비 바로 옆엔 어김없이 화장실이 있었다. 강제로 끌려와 타국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비를 만들었다더니, 바로 옆에 화장실이 설치됐다는 사실에 적잖은 위화감을 느꼈다.
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있어서 ‘왜’를 중요시하는 듯하다. 왜 일본이 무모한 전쟁에 돌입했는지, 그 경위에 대한 설명이야말로 사태의 본질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을 겪었던 그의 부친은 ‘종전’이 아닌 ‘패전’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부친의 동료가 남긴 회고록을 통해 이런 부친의 생각을 알게 된 이시바 총리는 이후 ‘반전’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갖고 정치에 입문했다. 총리 자리가 위태로운 그이기에 ‘전후 80년 담화’까진 어렵겠지만, 총리 개인 메시지라도 남길 수 있을지 일말의 희망을 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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