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전격으로 침공했다. 1967년 전쟁에서 빼앗긴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유대교 최대 명절인 욤키푸르(속죄일)에 터진 전쟁의 전개는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② 과거 전쟁에서 손쉽게 승리했던 이스라엘은 전쟁 가능성을 경시했다. 반면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은 부패와 비효율에 찌든 군 체제를 개혁했다. 소련의 지원으로 무기도 보강했다.
③ 유가 급등은 세계 경제에 공급 충격을 안겼다. 두 자릿수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치며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했다. 각국은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하고 전략비축유(SPR) 제도를 도입했다.
④ 1973년 금수조치로 하루 45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줄었다. 현재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감소한 원유 공급량은 하루 2000만 배럴에 달한다. 이 해협으로 운송되는 천연가스와 비료 원료의 공급도 급감했다.
당시와 지금의 차이는 물량만이 아니다. 당시에는 이란이 오히려 금수조치에 불참해 원유 공급망의 완충 역할을 했다.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탁월한 외교력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조기에 금수조치를 철회하자 원유 공급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⑤ 현재는 호르무즈해협이 언제 뚫릴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통행이 허가되어도 공급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외교적 대안도 기대하기 쉽지 않다. 1970년대보다 여건이 나을 게 없다.
결국 문제는 유가 상승 자체보다 충격의 지속성과 파급력이다. 1970년대의 교훈은 분명하다. 공급 충격은 과소평가된 채 시작되고, 그 대가는 예상보다 크게 돌아온다. 지금 위기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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