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대만은 지금 지폐 디자인 전면 교체를 추진 중이다. 2002년 현행권으로 교체한 후 25년 만이라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하지만, 한국이 현행 신권을 도입한 2006년과 4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지폐를 전부 갈아엎을 만큼 시간이 지났나’ 하는 의문도 든다. 대만은 한국에 비해 아직은 현금 결제 비율이 높긴 하지만 현금 사용량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다. 이번 전면 교체가 썩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② 대만 중앙은행은 위조 방지 기술 강화, 시각 장애인 친화적 설계 등을 교체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표면적 설명 뒤에 다른 속내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바로 현행 100·200대만달러 지폐에 새겨진 쑨원과 장제스의 얼굴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구원자냐 독재자냐’ 등 대만 현대사의 최대 논쟁적 인물 장제스 전 총통은 물론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쑨원마저 화폐 밖으로 밀어내,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중화민국’의 흔적을 지우고 대만만의 고유한 주체성을 앞세우겠다는 의도다.
③ 올해 초 대만 중앙은행은 ‘대만의 아름다움’이라는 대주제 아래 새 지폐 도안 테마를 선정하는 대국민 인터넷 투표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19만3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섬 생태계’라는 주제가 13만 표 이상을 얻어 1위를 차지했고, ‘보호 동물의 아름다움(9만9000표)’, ‘민속 축제(7만9000표)’가 뒤를 이었다.
④ 일본 역시 2024년 7월 지폐 디자인을 전면 개편하며 최고액권인 1만엔권의 얼굴을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로 교체했다. 근면하고 윤리적인 자본가 개념을 확립해 근대화를 이끈 기업가를 새로운 상징으로 삼고 1년여 뒤, 일본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등판해 혼란에 빠진 정치계를 장악하며 ‘강한 일본’ 재건에 돌입했다.
⑤ 방향성은 서로 다르더라도, 한 사회의 얼굴인 지폐에 시대 정신을 담으려는 치열한 고민은 진심으로 느껴진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둘러싼 논쟁이 두려워 반세기가 넘도록 시대와 동떨어진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을 지폐에 새겨 놓고 있지 않은가. 낡은 상징을 걷어내고 변화의 진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대만과 일본을 보라. 우리도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코난의 5줄 기사 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시의 벤치, 사람을 환대하는 디자인 (0) | 2026.03.06 |
|---|---|
| 경험 빈곤 시대, 온라인 세계에서행복하십니까? (0) | 2026.03.05 |
| '진실보다 바이럴' 트럼프의 AI 이미지 정치 (1) | 2026.03.05 |
| "군작전에 AI 못 쓰면 계약취소" 펜타곤, 앤스로픽에 최후통첩 (0) | 2026.03.05 |
| '팍스 아메리카나'의 붕괴 (0) | 2026.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