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의 5줄 기사 요약

수집가의 방, 분더카머의 세계

에도가와 코난 2025. 11. 2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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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있다. 그 방의 진열장에는 여행지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나 취향이 묻은 오브제, 혹은 추억이 깃든 물건이 놓여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무의미한 물건일지 몰라도, 그것은 나에게 시간을 머물게 하는 장치다. 일상의 사물부터 공예품이나 민속품, 빈티지 소품, 고지도와 고문서, 희귀 광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저마다 세계의 파편을 모은다. 수집은 단순히 축적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방식이자 대상에 대한 애착이며 취향의 표식이다. 

‘분더카머(Wunderkammer)’, 즉 기이하고 신비로운 것을 모아 놓은 ‘경이의 방’은 그러한 수집의 기원을 상징한다. 16~17세기 유럽의 왕실과 귀족, 교양 있는 상인과 학자들의 진열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은 이국의 공예품, 동물의 박제, 광물, 지도, 천문기기까지 희귀한 사물들이 가득했다. 과학과 예술이 분리되기 이전의 분더카머는 세계를 하나의 전체로 이해하려 했던 시대의 유산이자,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 질서화하려는 ‘호기심의 공간(Cabinet of Curiosity)’이었다. 

③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와 함께 수집은 공공의 성격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다. 왕실과 상류층 ‘수집가의 방’은 국가의 박물관으로 바뀌고, 진열장은 지식의 체계로 편입되었다. 한때 개인적 공간이었던 분더카머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속으로 들어가며, 경이의 감정은 지식의 분류로 대체된다. 


④ 발터 벤야민은 서재와 거실, 수집가의 방 등 19세기 부르주아의 실내 공간을 분석하며, 수집의 열정이 “기억의 혼돈과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수집가의 진열장은 단순한 물건의 집합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이 물질화된 장소이자 시간의 흔적을 보관하는 기억의 아카이브다. 

사람들은 이미지를 저장하고, 감정의 조각을 기록하며, 잊히기 쉬운 기억을 디지털 공간에 쌓아 올린다. 온라인의 사진첩과 SNS에 구축된 자신만의 편집된 세계는 현대의 또 다른 분더카머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모으고, 분류하고, 배열하며 자신의 존재를 시각화한다. 수집은 소멸에 대한 저항이자,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기억을 사유(思惟)로 바꾸는 행위다.

데미안 허스트의 수집품, ‘매혹적인 집착: 수집가로서 예술가’ 출품, 바비칸 센터,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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