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971년 미국의 무역수지가 100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모든 산업분야에서 경쟁력이 앞선다고 자부하던 미국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닉슨 행정부는 무역수지 악화의 원인으로 ‘강한 달러’를 지목했다. 8월 15일 닉슨은 무역 적자로 인한 금의 유출을 막기 위해 달러화의 불태환을 선언했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교환되던 달러를 더는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발표였다.
②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명맥을 유지하던 금본위제도가 사실상 끝났음을 뜻했다. 금과의 고리가 붕괴되자 정부는 자유롭게 돈을 찍어냈다. 인플레이션이 악화했다. 닉슨은 물가와 임금 통제로 대응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③ 국제시스템의 근간을 흔든 ‘닉슨 쇼크’로 전 세계는 우왕좌왕했다. 닉슨은 관세를 통해 각국을 협상장으로 이끌었다. 그해 12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주요 10개국 대표가 모여 달러화의 평가절하와 엔화 및 독일 마르크화의 절상에 합의했다. 그런데도 잠깐 개선되는 듯했던 무역적자는 더 커졌다. 달러화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자 각국은 고정환율제도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달러의 헤게모니가 크게 흔들렸다.
④ 닉슨은 헨리 키신저를 사우디아라비아로 급파해 ‘페트로달러’ 비밀협약을 맺었다. 원유 결제에 달러만 사용하게 해 국제결제통화의 지위를 겨우 지켰다. 하지만, 국제시스템을 개선하려던 닉슨의 시도는 혼란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⑤ 강한 달러 정책을 통해 해외 투자를 유인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경제는 전후 최장기 호황을 이어갔다. 하지만 달러 강세로 경쟁력이 약화되자 제조업은 미국을 떠났고 무역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트럼프 정부는 강한 달러 정책을 폐기하려 한다. 제2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 관세를 부과해 제조업 경쟁력 회복과 무역수지 개선을 추구한다. 하지만 인위적 국제금융시스템 조정은 큰 후유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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