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윤석열의 계엄이 웃을 수 없는 희극이었다면, 종교와 정치가 뒤엉킨 3·1절의 대중집회는 비극의 시작 같다. 정치인이 그런 집회에 나간다는 것은 정치의 기능이 무너졌음을 뜻한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선동이다.
② 두려움과 협박은 지배의 방법이지 정치의 방법이 아니다. 오래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말했듯,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지 않아야 정치다.
③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타자에게 의존하는 삶을 산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일당제가 아닌 다당제 민주주의를 한다. 정당들이 적이기만 할 뿐 서로에 대해 의무감이 없다면 정치는 있을 수 없다. 1인 지배체제나 전체주의가 무지의 동원을 극대화하는 까닭은 상대와의 대화와 토론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④ 전체주의자들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너무 쉽게 바꾸려 한다. 그들은 완전히 정의롭고 더없이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열망을 먹고 산다.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정당이나 집단을 경멸하고 없애려 한다. 그들의 혐오 목록에는 다양성과 이견, 차이, 갈등이 수위를 차지한다. 오로지 일치된 투쟁, 원팀, 하나됨만이 추앙된다. 다름과 이질성은 증오의 대상이다.
⑤ 『정치를 옹호함』(후마니타스 2021)의 저자 버나드 크릭이 적절히 예로 들었듯, “물지 않고 짖기만 하는 겁먹은 반대자들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 전체주의다. 침묵하거나 잠자는 개조차 가만히 누워 있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들이다. 꼬리를 흔들며 반길 때까지 전체주의적 대중이 그들을 채찍질한다.”
전체주의는 전통적 독재와는 달리 수동적 복종을 원하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지지하고 참여해야 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규모 집회를 동원하는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적대한다. 모든 것을 걸고 불의와 싸우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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