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몸이 아프다. ‘채식주의자’를 수년 전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고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그러하다. 일상이라는 견고한 성채를 쌓고 살아가면서 나날이 늘어가는 뱃살과 함께 너절한 세상을 비웃는 신공으로 무장한 심지어 나 같은 중년 남자에게도 그러하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② 그것은 오히려, 작품을 통해 형상화된 우리의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집단적 기억과 슬픔이 인류의 보편성으로 이해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축하할 일이라기보다는 경건해야 할 일이고, 지금까지 작가가 이룬 성취만큼이나 앞으로 우리에게 많은 숙제가 남은 셈이다.
③ 노벨 문학상 수상 결정 이후 쏟아진 이야기들은 사실 일방적인 ‘추앙’의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한강 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메타 스토리’는 충분히 생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 예컨대, ‘소년이 온다’를 읽는 것은 5·18에 대한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또한 수많은 독자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이야기의 공간이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 공간은 한강 작가 덕분에 여느 때보다 아주 많은 사람이 말할 수 있고 서로를 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쓴 이야기가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틔우는 것이 문학이다.
④ 내가 말하고 싶은 ‘메타 스토리’란 그런 것이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혹은 어제의 이야기가 새로운 이야기의 싹을 틔우고 새로운 이야기의 레이어를 만들어 오늘의 나와 우리에게 남기는 그런 흔적들. 그런 사소한 흔적들이 퇴적되어 세상은 바뀔 것이다.
⑤ 문학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 보는 것, 혹은 타인의 삶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아니겠는가. 공감하는 시민, 협력하는 정치를 우리 공동체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도 결국 문학 교육의 실종과 맥을 같이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모범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그런 후속 세대를 기를 수 있는가. 우리는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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