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타임스
'후불제 자본주의'가 남긴 청구서 본문

📰 한 줄 브리핑
한국은 자본주의를 빠르게 도입해 압축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기업 퇴출·노동시장 갈등·세대 간 부담 같은 비용을 뒤로 미뤄왔다. 이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그 ‘후불 청구서’가 한꺼번에 돌아오고 있다는 글이다.
✅ 5줄 요약
- 칼럼은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착안해 한국이 민주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 역시 ‘후불제’로 학습했다고 진단한다. 제도를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규칙과 비용 처리는 뒤늦었다는 의미다.
- 첫 번째 후불은 ‘학습의 후불제’다. 자본주의의 원리와 규범을 충분히 익히기 전에 압축성장을 했고, 주주권·기업 퇴출·시장 규율 등을 시행착오를 거치며 뒤늦게 배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 실제 칼럼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를 기대한 상법 개정 이후에도 부실기업 퇴출이 늦고 기업 간 옥석가리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사이드카가 발동됐던 날에도 코스피 상승 75개, 하락 826개였다는 사례를 든다.
- 두 번째 후불은 ‘부담의 후불제’다. 성장기의 비용을 미래세대에 넘겨왔으며, 현재 세대의 노후를 미래세대 보험료로 부담하는 부과식 연금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 결론은 자본주의를 폐기하거나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비용이 발생하면 그때 처리하고, 미래 비용을 미리 계산하며, 다음 세대도 시스템에 참여할 이유가 있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 핵심 개념 — ‘후불제 자본주의’
이 글의 표현이 상당히 좋다.
보통 자본주의의 장점은 먼저 나타난다.
투자 → 기업 성장 → 고용 → 수출 → 소득 증가 → 자산 상승
반면 비용은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부실기업 누적
노동시장 이중구조
자산격차
연금부담
세대갈등
구조조정 비용
그래서 한국은 고도성장기에는 자본주의의 수익을 먼저 경험했고, 성장률이 낮아진 지금부터 그동안 미뤄놓았던 비용을 지불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 ‘후불제 자본주의’의 의미다.
💡 코난의 통찰
① 나는 이 글에서 ‘후불제’라는 표현이 굉장히 좋은 프레임이라고 본다
한국은 정말 특이한 나라다.
서구가 수백 년에 걸쳐 경험한
산업화
→ 도시화
→ 민주화
→ 자본시장 발전
→ 복지국가
→ 고령화
를 몇십 년 만에 겪었다.
그러니 제도를 충분히 실험하고 수정할 시간이 부족했다.
쉽게 말하면
소프트웨어를 완성한 뒤 실행한 것이 아니라 실행하면서 계속 업데이트한 나라
에 가깝다.
그 결과 엄청난 성장이라는 이익도 얻었지만 버그도 누적됐다.
② 압축성장의 반대편에는 ‘압축 청구서’가 있다
고속성장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미래로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매년 빠르게 성장하면 많은 문제가 성장으로 희석된다.
예를 들어 GDP가 계속 커지면 부채가 있어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작아진다.
젊은 사람이 계속 늘어나면 노인 부양도 가능하다.
기업이 계속 성장하면 구조조정을 미뤄도 된다.
부동산이 계속 오르면 부실대출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즉,
고성장 + 인구증가
→ 미래의 파이가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
→ 현재의 비용을 미래로 이전 가능
했다.
그런데 전제가 바뀌었다.
저성장 + 저출생 + 고령화
다.
그러면 미래로 보내놓은 청구서의 부담이 갑자기 커진다.
압축성장의 뒤에는 압축된 청구서가 따라온다.
③ 그래서 이 글은 앞서 본 ‘노르웨이 미래대응기금’ 기사와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
노르웨이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돈이 생겼을 때 먼저 미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석유수입 발생
→ 국가부채 상환
→ 남은 돈 적립
→ 원금 해외투자
→ 기대수익 일부만 재정에 사용
즉,
현재의 이익을 미래세대와 나눈다.
반면 후불제 구조는 반대다.
현재 혜택
→ 현재 정치적 만족
→ 비용 발생
→ 미래세대 부담
이다.
이를 아주 단순화하면
노르웨이식 = 선불제
후불제 = 미래세대에게 청구
라고 볼 수 있다.
④ 연금이 가장 전형적인 ‘후불제’ 문제다
기사도 부과식 연금을 대표 사례로 든다.
부과방식은 기본적으로
현재 근로자의 보험료 → 현재 은퇴자의 연금
이라는 세대 간 이전 구조다.
인구가 피라미드형이면 잘 작동한다.
근로자 10명 → 노인 1명
이라면 부담이 작다.
그런데 저출생·고령화로
근로자 ↓
은퇴자 ↑
수명 ↑
가 동시에 일어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결국 조정 가능한 것은 크게
더 걷거나 / 덜 주거나 / 늦게 주거나 / 다른 재원을 투입하거나
하는 방식들의 조합이 된다.
어느 선택도 공짜가 아니다.
그래서 연금개혁의 본질은 단순히 회계가 아니라
어느 세대가 얼마를 부담할 것인가
라는 세대 간 계약의 문제다.
⑤ 기업 퇴출 문제도 똑같은 구조다
부실기업을 살려두면 당장은 편하다.
해고 방지
협력업체 보호
지역경제 충격 방지
채권은행 손실 지연
이 가능하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하지만 비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부실기업 유지
→ 자본·인력 묶임
→ 생산성 낮은 기업 존속
→ 신규기업으로 자원 이동 저하
→ 경제 전체 생산성 하락
으로 바뀐다.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좀비기업 문제와 연결된다.
즉,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에도 비용이 있다.
다만 칼럼이 제시한 특정 거래일의 주가 상승·하락 종목 수만으로 시장의 퇴출 기능이 약하다고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그 숫자는 필자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고, 실제 퇴출 효율성은 상장폐지 기준·기업 생존율·자본배분 생산성 등을 함께 봐야 한다.
⑥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경제학 원칙 하나가 나온다
비용을 없앨 수는 없다. 누가 언제 부담할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을 해보자.
지금 구조조정하면
현재 노동자 + 현재 주주 + 현재 채권자
가 비용을 부담한다.
미루면 당장은 편하다.
하지만 나중에는
미래 주주 + 금융기관 + 납세자 + 미래 노동자
가 더 큰 비용을 부담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는 후자가 유혹적이다.
왜냐하면
현재 부담자는 투표하지만 미래 부담자는 아직 투표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후불제 정치경제의 핵심적인 유인이다.
⑦ 그래서 민주주의와 ‘후불제 자본주의’가 결합하면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정치인은 대체로 임기가 짧다.
반면 정책비용은 길게 발생한다.
정치인의 시간축 → 4~5년
연금 → 수십 년
국가부채 → 수십 년
산업정책 → 10~20년
기후·에너지 → 수십 년
그러면 구조적으로
혜택은 현재에
비용은 미래에
놓을 유인이 생긴다.
이것은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정치가 갖는 일반적인 시간불일치 문제다.
그래서 앞에서 계속 나왔던 ‘자기구속(Self-binding)’이 다시 중요해진다.
재정준칙이나 독립적인 연금추계, 기금운용 원칙 같은 제도는 결국
현재 정치가 미래의 돈을 마음대로 당겨 쓰지 못하도록 현재의 자신을 묶는 장치
다.
⑧ 그런데 나는 이 글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고 본다
모든 ‘후불’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빚을 내서
고속도로
철도
교육
연구개발
전력망
을 만든다고 해보자.
미래세대도 그것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미래세대가 일부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합리적이다.
따라서 진짜 기준은
“미래에 비용을 넘겼느냐?”
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미래에 넘긴 비용과 함께 미래가 사용할 자산도 남겼는가?”
이다.
이 구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⑨ 그래서 국가부채도 ‘얼마냐’만 보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똑같이 100조원을 빌렸다고 하자.
A정부: 100조 차입 → 일회성 소비
B정부: 100조 차입 → 생산성 높은 인프라 구축
숫자는 똑같이 국가부채 +100조다.
하지만 미래세대가 받는 것은 다르다.
A → 부채 100조
B → 부채 100조 + 생산자산
따라서 세대 간 형평성을 제대로 보려면
미래에 넘기는 부채 - 미래에 남기는 자산
을 함께 봐야 한다.
⑩ 결국 좋은 자본주의는 ‘비용이 없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비용을 숨기지 않는 자본주의’다
기업은 망할 수 있다.
노동자는 직업을 잃을 수 있다.
투자자는 손실을 볼 수 있다.
산업은 사라질 수 있다.
고령화하면 연금 부담은 늘어난다.
이것을 전부 없애겠다고 하면 비용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좋은 제도는
누가 혜택을 받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가
언제 부담하는가
미래에 무엇을 남기는가
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후불제 자본주의’의 반대말은 반드시 ‘선불제 자본주의’가 아니다.
‘정직한 가격표가 붙어 있는 자본주의’
에 더 가깝다.
🔚 코난의 한줄
한국의 압축성장은 많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성장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으며 뒤로 미룰 수 있게 해준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저출생·고령화가 동시에 시작되면 미래라는 신용카드의 한도가 줄어든다. 이제 중요한 것은 모든 비용을 현재 세대가 부담하는 것도, 미래세대에게 한 푼도 넘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미래에 청구서를 넘긴다면 최소한 그 청구서보다 가치 있는 자산과 제도를 함께 넘겨주는 것, 그것이 ‘후불제 자본주의’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다.
🔑 핵심 키워드
#후불제자본주의 #압축성장 #세대간형평성 #연금개혁 #좀비기업 #구조조정 #국가부채 #자기구속 #경로의존성 #미래세대
[DBR 인사이트]‘후불제 자본주의’가 남긴 청구서|동아일보
[DBR 인사이트]‘후불제 자본주의’가 남긴 청구서
유시민 작가는 저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한국은 민주주의 제도의 혜택을 먼저 누렸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한 시민적 비용과 책임은 뒤늦게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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