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의 5줄 기사 요약

아이작 뉴턴은 왜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나

에도가와 코난 2025. 4. 2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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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으로 그가 원한 것은 기밀로 둘러싸인 조폐국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조폐국 책임자는 아이작 뉴턴이었다. 뉴턴이 조폐국을 맡게 된 사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턴은 ‘왕의 명령에 따를 의무가 있지만, 위법한 명령일 때는 불복종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며 교수들을 이끌었다. 1688년 의회는 국왕을 축출했고, 역사는 이를 명예혁명이라 부른다. 의원이 된 뉴턴은 1689년 권리장전에 이렇게 적었다.

“충성 서약은 오직 법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충성과 복종이 법을 넘어서면 노예임을 선언하는 것이고 왕은 절대적 지배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서약을 했더라도 우리는 법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이다.”


③ 이 무렵 뉴턴은 막 귀국한 존 로크를 만났다. ‘사회계약설’로 잘 알려져 있는 존 로크는 원래 과학을 공부하던 의사였다. 간 낭종 제거 수술에 성공해 귀족의 목숨도 살린 적이 있을 정도로 꽤 실력이 있었지만, 왕실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망명했다. 이후 명예혁명이 성공하자 영국에 돌아왔다.

 

이때 그가 마주한 것은 만유인력 법칙의 ‘프린키피아’였다. 인류 문명을 완전히 바꾼 엄청난 대작에 감탄한 그는 런던 정계에 진출한 뉴턴과 친해진다.


1696년 5월 조폐국에 출근하기 시작한 뉴턴의 첫마디는 “직접 보고 계산한 것 외에는 누구도 믿지 말라”였다. 공정을 뜯어보고, 장비를 다시 배치하고, 인력을 재조정했다. 대수학자가 직접 달려들자 1만5000파운드도 어렵다던 생산 라인이 매주 10만파운드를 쏟아냈다.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모르던 재주화 작업은 이렇게 정상 궤도에 올랐다.

 

동시에 뉴턴은 위조범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여럿 잡힌 적이 있지만 그들이 내놓은 변명에 사법기관은 속수무책이었다. 뉴턴은 달랐다. 위장 잠입과 정보원 고용을 마다하지 않고, 100명도 넘게 체포해 직접 취조와 심문을 맡았다.


결국 첼로너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서 그는 셔츠를 찢고 울부짖으며 미친 척 행동했고 뉴턴에게 호소문도 보냈지만, 뉴턴은 꿈쩍하지 않았다. 1699년 반역 우두머리 첼로너는 사형당했고, 같은 해 주화 재주조도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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