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 한 수도원에 자리한 도서관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가상의 저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희극편’이 수많은 장서와 함께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은 하나의 정신세계가 사라지는 것을 상징한다.
② 실제 역사에서도 ‘책의 학살(libricide)’은 인류가 축적한 지식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기원전 48년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화재로 4만여 권의 문헌이 한 줌의 재가 됐다고 한탄했다. 1923년엔 관동대지진으로 76만 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도쿄제국대 도서관이 전소됐다. 도서관과 함께 메이지유신 이후 반세기 동안 쌓은 일본의 지식자산 다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③ 시련이 이어졌지만 ‘지식의 집적체’인 도서관은 다시 일어섰다. 종교혁명 시기 영국 옥스퍼드대 도서관의 장서 96.4%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재건에 나선 토머스 보들리가 보들리언도서관을 설립한 이후 1300만 권이 넘는 인쇄물을 소장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④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도서관이 이제는 수명을 다해가는 모습이다. 미국 명문대 MIT가 대학 내 4개 도서관 중 베이커, 듀이, 로치 등 3개 도서관을 다음달 폐쇄하기로 했다. 재정 압박 탓에 도서관 직원을 정리해고하고, 중요 도서 보존작업을 외부 기관에 위탁하기로 했다.
⑤ MIT는 ‘세계 최고 엔지니어링 도서관’이 문을 닫는 이유로 재정문제와 함께 지난 10년간 인쇄 자료 이용이 급감해 전체 도서관 자료 이용의 1%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거론했다. 수많은 전쟁과 자연재해를 극복한 도서관이지만 인공지능(AI)과 인터넷이란 기술 변화는 넘지 못하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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