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의 5줄 기사 요약

책의 여백 속 빛바랜 손글씨

에도가와 코난 2025. 11. 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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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여백에 남긴 글을 ‘여백 메모(마지널리아·marginalia)’라고 부른다. 몽테뉴·뉴턴·다윈 등 많은 작가와 학자들이 여백 메모를 남겼다. 그렇다면 인류 최고의 여백 메모는 무엇일까? 17세기 프랑스 수학자 페르마(1601~1665·사진)는 3세기 디오판토스의 책 『산학』을 읽다가 여백에 여러 메모를 남겼다.

페르마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이 이 책의 여백에 적힌 아버지의 메모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는지 1670년에 메모를 담은 이 책을 메모와 함께 그대로 출판했다. 그중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불리는 메모 옆에는 여백이 부족해 증명을 쓸 수 없다는 말을 함께 남겨 놓았다. 

③ 그 후 “여백이 부족해”라는 말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이 증명에 도전했지만 300년이 넘도록 번번이 좌절의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을 자양분 삼아 수론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이때 태어난 이론들이 인류 문명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페르마의 메모가 가히 역사상 최고의 여백 메모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러셀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았다. “처음엔 흐물흐물한 껍질을 잘라내더니 그의 영리함이 끝내 신(神)을 잘라내는구나.” 당시엔 정체를 알 수 없던 ‘그’가 이번엔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 욕망의 주체, 우리의 ‘자아’가 아닌가! 오래된 메모가 때를 기다린 끝에 글을 깨웠다. 

⑤ 이처럼 책의 여백에 쓴 메모는 우리의 생각을 다시 깨우기도 하고 우리를 추억 속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때론 페르마의 메모처럼 우리 삶의 먼 길을 동행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오래된 종이책의 여백 속 빛바랜 손글씨가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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