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타임스
멸칭의 사회학 본문

📰 한 줄 브리핑
멸칭은 단순히 ‘말이 거친 것’이 아니라 상대를 하나의 부정적 이미지로 압축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정치적 도구다. 그러나 그 효과가 강할수록 상대를 악마화하고 타협의 출구를 닫아 결국 자기 진영까지 극단화시키는 비용이 커진다는 것이 이 칼럼의 핵심이다. 한국경제
✅ 5줄 요약
- 칼럼은 고대 중국의 ‘만·이·융·적’, 광개토대왕비의 ‘백잔’ 등에서 보듯 외부 집단을 낮춰 부르는 행위는 매우 오래된 집단정치의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한국경제
- 멸칭의 중요한 기능은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 극단적 사례로 나치가 유대인을 ‘기생충·바이러스’ 등에 비유하며 적개심을 동원했던 역사를 든다. 한국경제
- 그러나 상대를 지속적으로 비인간화하거나 조롱하면 나중에 협상·타협해야 할 때 자신이 만든 언어에 스스로 갇히는 문제가 발생한다.
- 칼럼은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도 정책 이견을 둘러싸고 정치인들을 겨냥한 극단적 멸칭이 등장하자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대표가 멸칭 자제를 요구한 상황을 계기로 이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경제
📚 역사적 맥락 — 멸칭은 왜 이렇게 오래됐을까?
인간은 세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사람을 집단으로 분류한다.
우리(In-group) ↔ 그들(Out-group)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인지 과정이다.
문제는 경쟁과 갈등이 심해질 때다.
그들
→ 나쁜 그들
→ 열등한 그들
→ 위험한 그들
로 바뀐다.
멸칭은 이 복잡한 과정을 단어 하나로 압축한다.
그래서 고대 국가 간 전쟁에서부터 현대 정치, 민족 갈등, 온라인 팬덤 싸움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 코난의 통찰
① 멸칭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을 만드는 것이다
멸칭을 들은 상대가
“아, 내가 잘못했구나.”
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반발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멸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요 청중은 상대가 아니라 우리 편이다.
“저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는 우리는 같은 편이다.”
즉 멸칭에는 일종의 집단 암호(Group Password) 기능이 있다.
② 그래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언어가 먼저 바뀐다
처음에는
정책이 다르다.
다음에는
생각이 틀렸다.
그리고
저 사람들은 이상하다.
마지막에는
저 사람들은 ○○다.
가 된다.
논쟁의 대상이
Idea → Person → Identity
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정책 토론은 어려워진다.
③ 멸칭의 강력함은 **인지적 압축(Cognitive Compression)**에 있다
한 사람은 원래 굉장히 복잡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고, 어떤 정책에는 찬성하고 다른 정책에는 반대할 수 있다.
그런데 멸칭 하나를 붙이는 순간 모든 복잡성이 사라진다.
복잡한 사람
↓
하나의 단어
↓
하나의 이미지
↓
좋음 / 나쁨
사람을 이해하는 데 드는 인지비용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④ 그래서 멸칭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언어’다
누군가를
보수 정치인 A
라고 부르면 그의 주장을 들어봐야 한다.
하지만
○○충
같은 표현을 붙이면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
단어 자체에 이미 결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Label → Judgment
사이에 사고 과정이 사라진다.
⑤ 이것이 멸칭과 프레이밍의 차이다
프레임은 사건을 특정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멸칭은 한 단계 더 강하다.
Frame + Judgment + Emotion
을 단어 하나에 넣어버린다.
그래서 매우 효율적인 정치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된다.
⑥ 동시에 멸칭은 일종의 적군 식별장치가 된다
집단 내부에서 특정 멸칭을 쓰느냐 안 쓰느냐가
“너 우리 편 맞아?”
를 판단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더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정책에 대한 생각보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가 정체성을 증명한다.
Policy Loyalty
보다
Language Loyalty
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⑦ 여기서부터 집단 내부의 극단화가 시작될 수 있다
강한 표현을 쓰는 사람이 더 충성스러워 보인다.
그러면 경쟁이 생긴다.
A: 저 사람은 잘못됐다.
B: 저 사람은 나쁘다.
C: 저 사람은 악이다.
D: 저런 인간은 제거해야 한다.
점점 강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더 ‘진짜 우리 편’처럼 보일 수 있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Outbidding, 즉 더 강경한 입장을 통한 내부 경쟁과 닮아 있다.
⑧ 그래서 멸칭은 상대 진영보다 자기 진영을 더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게 역설적이다.
처음에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멸칭을 만든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결국
우리 편이 상대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변한다.
Language → Perception → Emotion → Behavior
언어가 현실 인식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⑨ 결국 ‘상대가 틀렸다’에서 ‘상대는 악하다’로 이동한다
둘은 완전히 다르다.
상대가 틀렸다
→ 설득 가능
→ 협상 가능
→ 수정 가능
하지만
상대가 악하다
→ 설득할 이유 없음
→ 협상은 배신
→ 제거가 해결책
이 된다.
이 순간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타협의 공간이 급격하게 좁아진다.
⑩ 그래서 멸칭에는 협상의 옵션 가치를 파괴하는 문제가 있다
어제
“저 사람들은 나라를 망치는 ○○들이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국회에서 그 사람들과 협상해야 한다.
그러면 지지자들이 묻는다.
“그런 인간들과 왜 타협합니까?”
정치인은 자신의 과거 언어에 갇힌다.
즉
오늘의 공격 이익 ↔ 내일의 협상 비용
이라는 교환관계가 존재한다.
⑪ 바로 전 한동훈 칼럼에서 봤던 ‘정치언어의 옵션 가치’와 정확하게 연결된다
강한 언어는 순간적으로 큰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오늘의 적과 내일 협상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강한 정치인은 항상 강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3으로 말할 때, 7로 말할 때, 10으로 말할 때를 구분하는 사람
일 수 있다.
⑫ 그래서 이번 칼럼의 키신저 일화가 재미있다
오랜 기간 중국은 미국을 ‘미 제국주의’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관계 개선이 필요해졌다.
키신저가 중국에 들어가며 자신을 그 프레임 안에 넣어 유머로 받아쳤다는 일화를 칼럼은 소개한다. 한국경제
중요한 것은 농담 자체가 아니다.
적대적 언어의 고리를 누군가는 먼저 끊어야 관계의 새로운 단계가 열린다.
는 것이다.
⑬ 멸칭은 특히 SNS 시대에 훨씬 강력해졌다
SNS 알고리즘에서는 복잡한 문장보다
짧고
강하고
웃기고
화나게 만드는
표현이 퍼지기 쉽다.
“그 정책에는 세 가지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보다
멸칭 한 단어
가 훨씬 빠르게 확산된다.
그래서 디지털 정치에는
Nuance Penalty
가 존재한다.
미묘하고 균형 잡힌 설명일수록 확산에 불리할 수 있다.
⑭ 멸칭에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 밈이 된다
좋은 멸칭은
짧고
기억하기 쉽고
재생산하기 쉽고
변형하기 쉽다.
즉 인터넷 밈의 모든 조건을 갖춘다.
그러면 원래 누가 만들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커뮤니티가 스스로 복제한다.
Political Message → Meme → Identity
가 된다.
⑮ 그래서 정치인이 직접 멸칭을 만들지 않아도 위험할 수 있다
강성 지지자들이 만든 멸칭을 정치인이
웃어주거나
공유하거나
묵인하거나
하면 암묵적 승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이를 자제시키면 일부 강성 지지층에서는
“왜 우리 편 입을 막느냐”
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칼럼이 민주당 내부의 멸칭 자제 움직임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
⑯ 그런데 멸칭을 ‘금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말을 금지하면 새로운 표현이 생긴다.
왜냐하면 멸칭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밑에는
적대적 정체성
진영 경쟁
강성 지지층 경쟁
SNS 보상구조
가 있다.
그래서
Bad Words → Ban
만으로는 부족하다.
⑰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상대방의 인간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충
이 아니라
나와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
으로 다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상대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상대 역시 정치공동체의 정당한 구성원이라는 사실
은 인정해야 한다.
⑱ 여기서 ‘비판’과 ‘멸칭’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칼럼도 마지막에 **“비난으로 이룰 것은 없다”**고 쓰지만, 이를 ‘강한 비판을 하지 말자’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한국경제
둘은 다르다.
비판
“당신의 정책은 이 데이터 때문에 잘못됐다.”
멸칭
“너는 ○○다.”
전자는 행동·주장을 공격한다.
후자는 사람의 정체성을 공격한다.
⑲ 가장 좋은 기준은 ‘반박 가능한가?’다
좋은 비판은 반박할 수 있다.
“세율을 올리면 투자가 감소한다.”
데이터를 놓고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충이다.”
에는 반박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좋은 정치언어는 논쟁을 열고, 나쁜 정치언어는 논쟁을 닫는다.
⑳ 더 흥미로운 건 AI 시대다
AI는 인터넷에 축적된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다.
온라인 정치언어가
조롱
혐오
멸칭
진영 논리
로 가득해지면 AI 역시 그런 프레임을 학습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며칠 전 본 ‘아첨꾼 AI’ 문제와 연결하면 또 다른 위험이 생긴다.
개인화 AI가 사용자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
“맞습니다. 저 사람들은 정말 ○○입니다.”
라고 계속 동조한다면?
Human Polarization → AI Learning → Personalized Confirmation → Stronger Polarization
이라는 새로운 피드백 루프가 만들어질 수 있다.
㉑ 그래서 미래에는 ‘언어의 품격’이 단순한 예절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언어는
사고를 만들고
↓
사고는 감정을 만들고
↓
감정은 행동을 만들고
↓
행동은 정치문화를 만든다.
즉 언어는 정치적 인프라다.
㉒ 결국 민주주의의 수준은 ‘상대를 얼마나 세게 비판할 수 있느냐’와 동시에 ‘상대를 인간으로 남겨둘 수 있느냐’에서 드러난다
민주주의에는 강한 비판이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자는 조롱도 풍자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공동체 전체가
상대방을 제거해야 할 적
으로 보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경쟁은 전쟁에 가까워진다.
Opponent → Enemy
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코난의 한줄
멸칭은 단순히 품격 없는 말이 아니다. 복잡한 상대를 단어 하나로 압축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으로 만드는 매우 효율적인 정치 기술이다. 그래서 상대를 설득하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지만 우리 편을 결집시키는 데는 강력하다. 문제는 그 성공 자체가 함정이라는 데 있다. 멸칭이 강해질수록 ‘정책이 틀린 상대’는 ‘악한 적’으로 변하고, 오늘의 공격 언어가 내일의 협상을 가로막는다. 결국 건강한 정치언어의 기준은 점잖음이 아니다. 상대의 행동과 주장은 아무리 세게 비판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하나의 멸칭으로 대체하지 않는 것. 민주주의는 상대를 이겨야 하는 체제인 동시에, 내일 다시 그 상대와 함께 살아야 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 핵심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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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멸칭의 사회학
[천자칼럼] 멸칭의 사회학, 김동욱 기자, 오피니언
ww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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