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의 5줄 기사 요약

"인간 소설가는 내리막길서 달리기하는 신세, AI소설 선 넘으면 그땐 절필"

에도가와 코난 2026. 5. 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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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아니라 그저 무난한 넷플릭스용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라는 반박도 있지만, 어쨌든 ‘AI의 습격’은 현실이다. 소설가 장강명(51)이 떠오른 건 그 때문이다. 그는 논픽션 ‘먼저 온 미래’(동아시아刊)에서 AI에 적응하지 못한 프로 바둑기사가 예외 없이 도태된 현실을 취재해 썼다. 다른 장르보다 먼저 온 미래였다. 한편으론 1000쪽 가까운 벽돌책만 골라 읽은 뒤 ‘살면서 한 번은 벽돌책’(글항아리刊)을 펴냈다. 모든 지식은 이제 AI에 의존하면 된다는 세상에서. AI 파고(波高)에 대처하는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AI 시대에 벽돌책이라니.

“그래서 더 필요하다. 자동차 발명 이전에는 유산소 운동이 필요한 사람이 거의 없지 않았나. 뭐든지 즉시 답해주는 기계가 옆에 있으면 혼자 답을 찾기 위해 숙고하는 능력이 그만큼 감퇴한다. 사고(思考)의 결론이 아닌 과정을 익히고 싶다면, 대가들이 논증 과정을 세세히 기록한 두툼한 벽돌책만한 게 또 있겠나.”


③ 무례한 질문 하나. 소설 쓰는 AI가 등장하면 당신도 사용할 건가.

“나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설가에게 선택권이 있을 거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지금 던져야 하는 질문도 ‘문학이 어떻게 될까’가 아니라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좋다. 질문을 바꿔보자.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나.

“논픽션 ‘먼저 온 미래’의 결론은 기술이 가치를 이끄는 게 아니라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가치에 대해 잘 모른다. 가치란 무엇일까,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내 나름의 답안을 소설을 통해 제출하고 싶다.”


뒤처지면 죽는다는 공포에 사로잡히면 속도를 통제하지 못하면서도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은 그때 발생할 수 있다. 문학의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소설을 쓰겠다는 다짐보다 이게 낫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쓰는 것보다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보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더 중요하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로 도망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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