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 체레피킹 전락한 보수주의
① 보수주의가 처음부터 일목요연한 이론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관습과 전통의 집합물이고, 개인 삶과 문명이 스며든 결과물이다. 로버트 니스벳은 보수주의를 “사회는 언제든지 개조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고, 시대 불문의 보편 가치를 잣대 삼아 사리 분별과 신중함으로 모순을 개선하려는 정신”이라고 봤다.
② 보수주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도 “사회는 이성이 아니라 도덕·관습에 의해 재생산되고, 문명의 진보는 사회 안정을 통해 가능하며, 전통은 한 세대만의 이성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그가 급진적인 프랑스 혁명을 비판한 이유다. 진보가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등 목적을 정해 놓고 현실을 맞춰가는 연역적인 데 반해 보수는 자생적 질서 속에서 체화된 것을 수용하는 귀납적이다.
③ 러셀 커크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간 논쟁 등을 거쳐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와 연합해 큰 정부 반대와 개인의 자유 중시에 공감했다. 배리 골드워터가 <보수주의자의 양심>에서 제시한 것도 작은 정부, 개인 역량과 창의가 발휘될 수 있는 자유시장 경제 등이다.
④ 전체주의와 독재 배제, 법치 존중 등도 현대 보수주의의 정신이다. 이런 보수주의 정신은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이다. 영국 보수당 대표이던 마이클 하워드가 제시한 ‘누군가의 가난이 다른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이라고 믿지 않는다’ ‘지나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 ‘국민은 커야 하고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믿는다’ 등 16개 항의 보수주의자 신조도 보수의 바이블로 통한다.
⑤ 미국과 영국의 현대 보수주의는 치열한 논쟁과 고민 끝에 이렇게 재탄생했는데, 우리는 어떤가. 보수 본류라고 자임하는 국민의힘부터 돌아보면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은 제도의 안정성과 절차, 과정을 중시하는 보수의 가치를 정면 훼손했다. 법치보다 인치라는 흑역사도 남겼다. 대선 후보 경선과 단일화 과정에서 벌어진 행태는 자기 책임 실종이다. 공공을 위한 가치 공유가 아니라 사적 기득권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처럼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