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생일과 히틀러의 죽음
① 1944년 4월 러시아를 완전히 탈환한 소련군은 독일 베를린을 향한 최후 공세를 앞두고 있었다.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 지정한 베를린 함락일은 4월 22일이었다. 그날이 사회주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의 탄생일이었기 때문이다.
② 이것도 아이러니인데, 1차 세계대전 때 레닌이 러시아 모스크바에 갈 수 있었던 건 독일이 호의를 베풀었던 덕분이었다. 독일은 레닌이 러시아 왕정을 전복시키면 동부전선에서 러시아의 압력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레닌은 혁명에 성공했고, 독일의 은혜를 갚는다기보다는 러시아 혁명에 몰두하기 위해 전쟁을 중단했다.
③ 레닌의 탄생일이 아돌프 히틀러의 사망일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무리한 명령이어서 소련군은 그날까지 베를린을 함락하지 못했다. 덕분에 히틀러는 열흘을 더 살았고, 베를린은 3일을 더 버텼다.
④ 이 최후의 기간에도 히틀러의 측근들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전선에서 오는 보고는 허위보고이며, 독일은 적을 격퇴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히틀러 최후의 라디오 연설에 전 국민은 눈을 돌렸는데,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인 요제프 괴벨스는 천 년에 한 번 나올 영웅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이건 양반이고 측근들은 마지막까지 히틀러 후계 자리를 두고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었다. 오히려 히틀러가 이들보다 먼저 자신의 실패를 예감했다.
⑤ 그러나 히틀러의 마지막 생각은 한심한 측근들보다 더 무서웠다. 자신이 곧 독일이며, 자신이 죽는다면 독일도 함께 영광스러운 최후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두 함께 싸우다가 죽어라. 권력은 사람을 바보, 미치광이로 만든다. 히틀러와 측근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