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돈 달라고? 너무 나간 트럼프 정부
① 마흔한 살의 부동산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는 1987년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보스턴글로브에 자비로 전면 광고를 실었다. 제목은 ‘미국이 자국을 방어할 능력 있는 국가들을 방어하기 위한 지불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공개서한’이었다.
② “적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대화하지 않으니. 문제는 동맹이다. 동맹이 적정한 몫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 가서 물건을 팔려고 해보라.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들은 여기 와서 자동차를 팔고, VCR을 팔고, 우리 기업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 나라를 두드려 패고 있다. 이건 자유무역이 아니다. 쿠웨이트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 왕처럼 산다. 그런데 우리한테 돈을 안 준다. 우리 덕에 석유를 파는데, 왜 이익의 25%를 안 주냐.”
③ 지난해 트럼프 당선 직후 내놓은 ‘국제 무역 체계 재구성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 보고서에서 1985년 프라자 합의와 같은 일명 ‘마러라고 합의’를 통해 달러 약세를 유도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제조업 유턴을 도모하자고 제안하면서 유명해졌다. 마이런은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미국이 ‘안보 우산’과 ‘준비자산’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한 덕분에 세계 평화와 경제 번영이 가능했다고 규정했다. 두 공공재를 운영하는 비용이 큰데 지금까지는 미국인의 희생으로 감당했지만, 앞으로는 외국 정부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이 무임승차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안 미국은 무역적자, 강(强)달러로 인해 제조업이 몰락하고 중산층이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공공재를 계속 사용하려면 이제라도 미국의 짐을 나눠서 져야 한다고 했다.
④ 마이런의 가설 곳곳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기축통화 지위는 누리면서 달러 약세를 유도해 무역적자를 없애겠다거나, 제조업 유턴을 위해 관세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면서 동시에 국가별 협상을 통해 관세를 깎아주겠다는 식으로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미국이 관세를 매겨도 보복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건 다른 나라의 주권국으로서 지위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다.
⑤ 미국 지도자들의 문제의식과 고통에는 공감한다. 중국이 패권에 도전하는 가운데 위기에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쇠락한 제조업과 위기의 중산층 일자리를 걱정할 것이다. 문제는 맞았지만, 그 답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대처는 목표 달성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국이 우려하는 바로 그것, 영향력 상실과 쇠락을 가속할 위험마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