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관리하는 의대 학생회, 후배들 복귀 가로막는다
① “매주 쪽지 시험 범위가 PPT 1000장이 넘는다.”
서울의 한 의대 본과 2학년 휴학 중인 A씨는 본지 통화에서 “의대는 공부량이 방대해서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치를 수도, 졸업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의대 족보는 각 과목의 기출 문제나 주요 필기 내용 10여 년 치를 묶어 놓은 자료를 말한다. 학생들이 만들어 공유한다.
② 이런 족보가 최근 의대생 복귀를 막는 주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족보는 의대 학생회나 동아리 선배들이 관리하는데, 복귀하는 의대생에겐 족보 접근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A씨는 “복귀한 의대생 중에 족보 없이 맨땅에 헤딩식으로 혼자 공부하다 지쳐서 다시 휴학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족보 제공권’을 가진 의대 학생회나 지도부는 의대생의 생살여탈권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③ 본지가 연락한 의대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족보 없이는 의대 생활을 못 한다”고 했다. 의대는 한 학기에 공부해야 수업 자료만 수만 쪽에 달할 정도로 다른 과들에 비해서도 공부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기출 문제와 수업의 핵심 내용이 담긴 족보는 의대생에게 중요하다. 의대에서 족보가 ‘왕족(족보가 왕)’ ‘족생족사(족보에 살고 죽는다)’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④ 이 때문에 ‘족보 제공 배제’는 ‘배신자 낙인’과 함께 의대생의 수업 복귀를 가로막는 양대 장벽으로 통했다. 정부의 ‘족보 센터’ 설치는 이런 족보 문제를 해결해 학생 복귀율을 높이려는 취지다.
⑤ 의대생들은 “선후배와 동료들의 눈치, 전공의 선발 때 선배들의 입김 등 복귀를 주저하게 하는 여러 요인이 있고 족보 문제도 그중 하나”라며 “앞으로 교수님들의 시험 문제가 공개되고 이것을 학교가 모아 공유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