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대통령임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
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주저앉았다. 직접 싸우려 하지 않는 장수 옆에 군사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았는지, 원래 성정(性情) 자체가 다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윤 대통령은 싸움의 길을 택했다. “야당은 반국가 세력” “광란의 칼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란 작년 12월 12일 대국민 담화는 사실상 ‘내전(內戰) 선포’나 다름없었다.
②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윤 대통령으로선 계엄 실패 직후의 ‘2 대 8’도 안 되는 불리한 정치 구도를 ‘4 대 6’ 안팎의 구도로까지 바꾼 듯 보인다. 보수 저변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이나 두려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무능, 헌재의 정치화 논란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지만 적어도 대통령 자신이 싸울 의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③ 윤 대통령의 머리 위엔 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그의 운명도 운명이지만, 나라가 찬탄 반탄이란 두 개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황 자체가 우려스럽다. 마치 나라 전체가 거대한 콜로세움의 흥분한 군중처럼 피를 보고 쓰러져야만 끝나는 검투사 게임에 몰입해 들어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④ 그렇다 해도 이런 정파의 득실이나 정략적 셈법을 떠나 하야는 윤 대통령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선택지라는 생각은 든다. 여론이 그나마 호전된 지금이라도 자신의 오판으로 빚어진 국가적 혼란에 대해 스스로 최고 수준의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결자해지의 모습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⑤ 닉슨의 하야 성명서를 다시 찾아봤다. “지금도 임기 만료 전 떠나는 것에 내 본능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부통령 애그뉴가 비리 혐의로 사임한 것과 관련해 닉슨이 자신의 탄핵을 막기 위해 애그뉴를 먼저 ‘속죄양’ 삼은 것이란 평가도 있다. 그렇게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 닉슨은 본능을 억눌렀다.